발레는 유럽에서 시작한 무용이다. 발레는 본래 유럽의 궁정과 귀족사회에서 누리던 사교 무용이었다. 지금은 러시아나 프랑스 등에서 발레가 유명하지만, 최초의 발레는 13세기 이탈리아에서 탄생했다. 발레가 워낙 러시아에서 유명하고, 발레용어는 프랑스어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쪽 나라에서 시작되었을 거라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16세기 카트린도 메이시스가 프랑스 왕 앙리 2세와 결혼하면서 프랑스 왕궁으로 발레가 전파된다. 발레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루이 14세가 왕실 음악 무용 아카데미를 설립하면서부터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루이 14세. 발레도 루이 14세와 연관이 있다니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실제 현재 발레를 고안하고 널리 전파한 것은 러시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발레가 러시아 무용인 것처럼 오인하는 경우가 있다. 17세기 러시아 황제 표트르 대제는 프랑스의 유명한 무용가들을 불러 발레를 본격적인 무대예술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그러면서 이들이 활동하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을 중심으로 발레가 발전했다.
르네상스는 15세기 인문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고대 문화의 부흥을 지향한 문화운동이다. 발레 역시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았다 할 수 있다. 이전까지 무용은 중세 기독교로 인하여 크게 발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무용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이고,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한 방식으로서,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 따라서 일부는 귀족계급의 오락으로서 했고, 행사에서 중요 구실을 하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하고, 이탈리아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발레가 프랑스로 옮겨가며 큰 발전을 이룬다. 15세기 말부터 17세기까지 프랑스는 이탈리아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프랑스 궁정에서 공연하던 무용과 달리, 발레는 스텝이 다채롭고 인간의 몸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발레는 프랑스에서 큰 환영을 받는다. 밀라노의 제일 유명한 발레 선생님인 폼페오 디오 보 노를 1554년 프랑스로 데리고 온다. 그리고 그에 의해서 발레는 큰 발전을 이룬다. 앙리 2세는 그에게 여러 명예를 주었다. 폼페오 디오 보나, 본격적으로 이탈리아의 발레를 프랑스 궁정에서 발전시킨 사람은 카타리나 데 메디치라는 피렌체 메디치가의 딸이다. 그녀는 앙리 2세의 왕비가 된 사람이다. 그녀는 무용을 아주 좋아했고, 또 무용을 잘하기도 했다. 그녀는 후에 몸이 아팠던 아들인 세 명의 국왕을 대신하여 섭정 지위에 올라 권력을 마음껏 누리기도 했고, 그에 따라 자연히 그녀가 좋아하던 발레도 발전하였다. 이에 따라 발레가 궁정 오락 중 최고가 되었다.
이처럼 역대 국왕의 지원을 받아 발레는 꾸준히 발전했다. 루이 14세 시대에 와서는 발레가 큰 발전을 이루게 된다. 루이 14세 그 자체가 발레의 대가였다. 20년 동안 매일 발레 연습을 했다. 그가 직접 발레 작품에 출연하여 공연하기도 했다. 총 27편의 발레에 직접 출연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밤의 발레'에서 태양왕 아폴론의 역할을 하였는데, 이 발레 공연 후 그에게 태양왕이라는 별명이 생겨났다. 발레를 직접 하기도 했지만, 루이 14세는 발레 무용가를 양성하는 데에도 큰 관심이 있었다. 1661년 파리에 왕립무용학교를 설립하였고,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 내려오는 국립 음악 무용학교이다.
왕립 무용학교가 생겨나자, 그때까지 궁정이나 귀족 저택에서만 즐겨왔던 발레가 변하게 되었다. 전문가를 양성하기 시작한 것은 궁정 발레의 내용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학교에는 귀족 자재뿐만 아니라 남녀 불문 우수한 소질이 있는 자들이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카데미에서 훌륭한 무용가들이 계속 생겨나자, 결국 궁정 밖 극장으로 발레가 진출하여 대중에게 선보이게 된다. 발레가 일반 대중에게 개방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그 이후 프랑스 혁명기가 도래하고, 이 시기에는 장 조르주 노베르 등 뛰어난 무용가가 배출되었다. 이 시기에는 발레 의상이 좀 더 자유롭게 바뀌었고, 가벼워졌다. 그러면서 자연히 육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게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기, 발레 자체의 발전은 더뎌졌다. 그 시기 다시 발레의 주도권은 이탈리아로 옮겨갔다. 살바토레 비가노, 카를로 블라시스라는 이론가가 이탈리아에서 발레를 발전시켜 나갔다. 19세기 초기에는 밀라노가 발레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19세기는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 모든 분야에서 낭만주의 운동이 활발히 일어난 시기이다. 발레도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낭만주의 시대 발레는 기교와 의상에 있어서 큰 변화가 있었다. 그 대표작으로'라 살피듯'와 '지젤'이 있다. 낭만 발레도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점차 쇠퇴기를 맞이했다. 아무래도 복합 예술이라 할 수 있는 오페라가 등장하면서 발레의 인기가 줄어든 탓도 있다. 파리 오페라 극장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낭만 발레의 쇠퇴는 발레의 중심지를 러시아로 옮겼다. 17세기에 표트르 대제 시대에 대제는 루이 14세를 본떠서 무용을 장려했다. 그러면서 자연히 러시아 발레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안나 이바노브나 여제 시대에 여제는 프랑스를 본떠 프랑스로부터 발레 교사를 초빙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무용학교를 설립한다. 이것이 현재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린스키 극장이다. 그리고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은 1825년 개장되었다. 1801년에는 프랑스 샤를 뒤로 발레 교사가 러시아로 오면서 러시아에 낭만 발레가 보급되었다. 황실의 열렬한 지원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는 러시아 발레의 2대 중심지가 되었다. 계속된 발레의 발전기를 거쳐서, 세계 으뜸가는 고전 발레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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